사피윳딘입니다.

오랜만의 시리아 문화 유산 이야기입니다. 사실 좀 게으름 피우면서 적고 있었는데, 요즘 메인에 자주 올라가는 상황이 좀 민망해서 후다다닥 적어봅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다마스커스 내의 이슬람 사원, 즉, 모스크 위주로 문화 유산 소개가 이루어졌죠. 특히 상당히 아름다운 장식이 자랑이었던 시아파 사원인 사이다 자이납과 사이다 루까이야, 그리고 우마위야 사원에 대해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어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세 사원은 모두 카르발라 전투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초기 이슬람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끼쳤습니다. 또한 그만큼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죠.

하지만, 시리아가 이렇게 이슬람 형성에만 지대한 역할을 끼친 장소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전의 세계 종교인 기독교의 형성에도 엄청난 역할을 했던 장소가 바로 시리아, 그리고 다마스커스죠.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기독교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사도 바울(참고로 원래 히브리어로는 사울이고 바울은 그리스어입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리스어가 성경의 기본이 되었으니 ... 실제로 카톨릭에서는 바오로라고 하죠. 공동번역성서에는 바울로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제가 성경이 개신교판 밖에 없는지라 좀 헷갈릴 수도 있으니 그냥 이후 바울로 통칭하겠습니다(넵, 제가 좀 잘 헷갈립니다))이 있습니다.

시리아에는 바로 그 사도 바울과 관련된 성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오늘 소개드릴 사도 바울 낙마 교회와 나중에 소개드릴 아나니야 교회, 그리고 광주리 교회(밥 키산)를 들 수가 있죠. 

그래서 당분간 사피윳딘의 시리아 문화 유산 이야기는 기독교 특집(!!!!!)으로 갑니다. 여태까지 이슬람 시아파 특집(!!!!)이었으니 좀 균형을 맞춰보도록 하죠(하지만 사실 시리아에는 시아파 유적보다 기독교 유적이 더 많다는 거...).

우선 사도 바울하면 기독교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첫째로 신약 성서의 대부분을 저술한 인물 - 거의 대부분이 이 사도 바울이 적은 편지 또는 사도 바울과 관련된 편지로 이루어져 있죠 - 이라는 점. 

두번째로 기독교의 해외 선교의 초기 모델을 제시한 인물이자 이방 기독교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

세번째로 기독교가 유대인의 종교가 아닌 세계인의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인물이라는 점. 사실 이렇게만 두고 봐도 사도 바울은 기독교에 있어서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도 되겠죠.

그러나 원래 바울은 기독교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초기 행적에 대한 이야기는 사도행전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요. 일단 바울과 관련된 부분을 주로 살펴보도록 할께요.

당시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였습니다만, 베드로와 요한을 위시한 초기 사도들의 노력으로 인해 서서히 세가 늘어가게 됩니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사두개파(주 : 사두가이파라고도 합니다)가 움직여 12사도들을 산헤드린 공회(주 : 당시의 법정 같은 곳으로 유대의 각 도시마다 존재했습니다)에 세우게 됩니다만 바리새파(주 : 바리사이파라고 합니다)의 거두이자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의 중재로 풀려나게 되죠(사도행전 5:17~5:42).

당시 유대교는 주로 상류층으로서 로마와 헬레니즘 문화에 우호적이었던 사두개파와 주로 중산층이며 유대 전통 문화와 율법을 중시하던 바리새파가 대립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뭐, 요세푸스의 저작에서는 유대 4대 학파라고 해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외에도 엣세네파와 열심당이 있습니다만... 엣세네파는 속세 정치에는 그리 관여하지 않았고, 열심당은 당시 기준으로 좀 과격분자들이었던지라 아무래도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현실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학파들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대립 관계가 한참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예수의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형국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판단해보면 가말리엘의 중재가 그런 사두개파를 견제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가말리엘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죠. 

기본적으로 가말리엘이 당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후 기독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사도 바울에게 종교적 지식을 가르쳤던 스승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사도들을 변호해 풀려나게 해준 은인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마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가톨릭에서는 이 분을 성인으로 모시고 있을 정도죠.

어쨌든 이후, 기독교의 교세가 점점 커지면서 헬라파(이방 기독교)와 히브리파(유대 기독교) 사이의 내부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에 히브리파를 대표하던 사도들은 헬라파의 이방 기독교인들을 끌어안기 위해 이방 기독교인 중 일곱 집사(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를 뽑게 되죠(사도행전 6:1~6:7). 

이 중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이 바로 스데반(주 :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로 스테파노라고도 합니다)이었습니다. 스데반은 뛰어난 학식과 논리로 무장해 어떤 종교 논쟁에서도 지지 않았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죠. 그 뛰어난 능력 때문에 오히려 당시의 다수파였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양쪽의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스데반을 신과 모세를 모욕했다는 죄목을 붙여 산헤드린 공회에 세우게 됩니다. 이곳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시대부터의 유대 역사를 쭉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조상이 선지자들을 박해했으며 또한 의인(예수님이겠죠)을 잡아죽인 일에 대해 강하게 질책합니다. 그와 동시에 예수가 신의 우편에 선 환상을 보며 이 사실을 외치게 되죠.

이에 공회에 있던 사람들이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친 후 돌로 쳐서 살해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최초의 순교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스데반 사건입니다(사도행전 7장 전체).

그런데 이 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이 때는 히브리어 이름인 사울로 나오죠. 참고로 일반적으로 박해자의 시기를 히브리어인 사울로, 교인의 시기를 그리스어인 바울로 구분을 합니다만 사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회심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다마스커스(성경에서는 다메섹)에서 전도하다 탈출해 예루살렘으로 간 후, 카이사리아(성경에서는 가이사랴)를 지나 타르수스(성경에서는 다소)로 갈 때까지도 계속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죠. 그러다 성경에서 바울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오기 시작한 에피소드를 보면 키프로스(성경에서는 구브로)에서 첫 전도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였습니다(사도행전 13:9).

이는 아마 당시 바울이 유대 내부에서 활동할 때는 히브리 이름인 사울을 주로 사용했지만 이후 기독교인이 되어 선교 여행을 떠나면서는 당시 세계 공용어인 그리스어를 사용했기에 그리스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울은 살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스데반의 행동을 마뜩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살해 현장에 함께 있었을 정도로 스데반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습니다. 그렇게 스데반이 죽은 후에 사울은 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이에 많은 교인들이 흩어지게 되죠.

이에 사울은 교인들이 다마스커스로 많이 도망갔다는 첩보를 입수, 이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잡아들이기 위해 다마스커스의 유대 회당의 협조를 얻기 위한 공문을 얻어 다마스커스로 향합니다(사도행전 9:1~2).

그런데, 바로 이렇게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도중 사울은 하나님의 홀연히 비추는 빛과 함께 하나의 음성을 듣게 되죠(사도행전 9:3~9:6).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시나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자가 있느니라"

그리고 사울은 바로 눈이 멀어 주변의 부축을 받아 다마스커스로 들어옵니다. 이후 예수의 명을 받은 아나니아에 의해 눈이 고쳐지고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죠.

바로 사울이 예수를 만난 이 사건이 일어난 자리로 알려진 곳에 세워진 교회가 바로 지금 소개드릴 사도 바울 낙마 교회입니다. 사울이 빛을 보고 말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사도 바울 낙마 교회라고 해요. 그리고 현재 러시아 정교회가 관리를 하고 있죠. 구글 맵으로 위치를 검색해보니 대충 이 정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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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보시면 감이 오시겠지만 다마스커스에서 남서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이 교회가 위치하고 있죠. 그리고 예루살렘 역시 다마스커스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교인들을 잡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중 거의 다마스커스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 위에서 적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어쨌든 이후의 사도 바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나니아 교회 편(어이)에서 적도록 하고 이제는 간단히 사도 바울 낙마 교회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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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낙마 교회의 정문 사진입니다. 문의 문구를 보시면 아랍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로 현판이 달려있죠. 뜬금없이 왠 러시아어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도 바울 낙마 교회는 러시아 정교회가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그 이유는 동방 정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요.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당시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가 스스로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면서 짜르(이 사람이 처음 짜르라는 호칭을 사용하죠)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 소피아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종교적으로도 비잔틴 제국 멸망 후 동방 정교를 국교로 한 유일한 교구가 러시아(다른 4대 전통 교구인 콘스탄티노플, 안티오케이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은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가 되다보니 "모스크바는 제 3의 로마" 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면서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을 높이게 되죠.

어쨌든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은 주변 공국들을 병합하면서 그 덩치를 키워갑니다. 종교적으로도 소유파와 비소유파의 논쟁이 일어나는등 다양한 움직임이 생겨나죠.

이런 움직임 속에서 표도르 1세(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대제랑 헷갈리시면 곤란. 오히려 이 왕 때 류리크 왕조가 붕괴해 동란시대에 들어가게 됩니다)때 결국 모스크바 대주교를 총대주교로 격상시키면서 콘스탄티노플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1589년에 모스크바의 총대주교가 다른 4대 교구(콘스탄티노플, 안티오케이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들에게 인정받아 동방 정교 5대 전통 교구가 형성됩니다.

어쨌든 이렇게 러시아가 동방 정교에서 인정을 받고 정치적인 독립성으로 인해 동방 정교 내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의 관리권도 손에 넣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무래도 타당하겠죠. 지금의 그리스 정교회는 1833년에 콘스탄티노플 교구에서 독립했기에 아무래도 러시아 정교회에 비해서는 세력이 그리 크지는 못할테니까요.

... 뭐,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졌습니다만... 어쨌든 그래서 러시아 정교회가 이곳을 관리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라는 겁니다(이거 이야기하려고 꽤나 길게 이야기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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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도 바울 낙마 교회의 전경입니다. 꽤나 깔끔하게 되어 있죠. 사실 원래 있던 교회를 리모델링한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외관은 그 전에 비해 그렇게 바뀌지 않은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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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오른쪽에 서 있는 사도 바울 동상이에요.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이 사람을 압도하더군요. 특히 사도 바울의 기독교사에서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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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밑에는 이렇게 사도 바울의 일생과 관련된 양각이 파져 있습니다. 물론, 이 장소에 관련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낙마하는 모습도 잘 나타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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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모습입니다. 공간은 상당히 작은 편입니다. 이 사진도 거의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니 얼마나 작은 교회인지는 대충 예상이 가실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초기 교회들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죠. 나중에 소개를 드릴 아나니아 교회나 광주리 교회도 규모는 사실 그렇게 많이 크지 않습니다.

저 위의 성화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네, 예수님과 12사도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지역의 교회들은 이렇게 앞에 성화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죠. 

아래의 성화는 왼쪽부터 사도 바울, 아기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인 예수입니다만, 마지막 하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은 솔직히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세례 요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마스커스와 관련된 기독교 성인 중 잘린 머리하면 세례 요한이 바로 떠오르니까요(사피윳딘의 시리아 문화 유산 이야기 - 우마위야 사원 편 참조). 혹시 확실히 아시는 분이 계시면 덧글로 남겨주세요.


추가 : 세례 요한이 아니라 다윗 같다는 이야기도 말씀도 들리네요. 일반적으로 다윗을 표현하는 성화에 골리앗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성화들이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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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텐 안쪽에는 이렇게 각종 십자가와 성화, 성물들이 있습니다. 상당히 공간은 좁은데 이외로 성물들이나 성화들이 많이 있어서 좀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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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이 카메라로 내부에서 최대한 분위기 잡아서 찍어본 사진입니다만, 역시 제 사진 실력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딱 눈에 보이는군요. 어쨌든 외부에서 저 좁은 십자가 모양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상당히 멋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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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쪽은 그래도 꽤 밝은 편입니다. 장식도 꽤나 소박하죠. 기본적으로 이 교회 내부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상당히 소박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소박해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의 교회이다보니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겠더만요.

어쨌든, 이 사도 바울 낙마 교회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올드 다마스커스와는 달리 좀 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 곳입니다. 저 역시도 한인 교회의 성지 순례팀과 같이 갔었던지라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은 아쉽게도 알지 못해요. 다만, 소말리에 터미널에서 레바논 쪽으로 쭉 가다가 좌회전해서 약간 들어갔다... 정도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입장료는 무료이고, 열리는 시간은 하절기에는 아침 8시~저녁 8시 30분까지, 동절기에는 아침 8시~저녁 5시까지입니다.

혼자 가시기는 조금 힘든 곳이지만 기독교인이시라면 한번쯤 가보실만 한 곳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더 많은 사진을 보고 싶으시다면 제 포토로그로 가시면 더 많은 사진을 보실 수 있어요.

요기(여기는 낙마 교회말고도 스웨이다 박물관 사진도 함께 있습니다)랑 요기(여기는 낙마 교회만)로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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