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윳딘입니다.

.... 그동안 해외에는 여러번 다녀왔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명승지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지라 이번에 좀 쉬고 있을 때 한번 다녀올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지난 주말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안동하면 전통 문화의 요람이기도 하지만 간고등어, 찜닭, 식혜등 한국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안동이라는 곳이 내륙지방임에도 불구하고 간고등어 같은 음식이 대표 음식이 될 정도로 음식 문화에 있어서도 그 발상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점을 들 수가 있죠.

.... 때문에 식도락 여행을 즐겨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식도락보다는 명승지 탐방이 개인적으로 취향인지라..... (.... 라기보다는 최근 돈이 없어서 비싸기로 유명한 간고등어나 찜닭류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는 것이 정답입니다만...... 넵넵. 필사적인 자기 합리화랍니다. 결국.... ㅜㅜ). 목적지는 그냥 하회 마을로 정했습니다.

하회 마을.... 하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을 해서 유명해진 곳이었고, 풍산 류씨 집성촌이자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은거지이기도 하죠. 연예인인 류시원씨가 바로 이곳 출신이기도 하고요(류시원씨의 부친이 현재 이곳에 거주 중이십니다). 더불어 가장 유명한 하회탈의 제작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을 전체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기도 하죠.

자, 어쨌든 감상은 넘어가고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죠. 실은 제가 안동 쪽에 갈 일이 있었던지라 그 일을 빨리 처리하고 바로 하회 마을로 향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 관계로 만난 분이 제가 하회 마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같이 가자" 라고 하시는 바람에 둘이서 하회 마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도 저도 안동 출신이 아니었던지라 목적지는 하회 마을로 정해져 있었지만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일단 이쯤 되면 택시를 타주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긴 했지만....

예! 산! 부! 족!

..... 안동 시내에서 하회 마을이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알고 택시를 탑니까. 더군다나 관광지는 언제나 도시에서 "꽤 떨어져 있는 것" 이 정석(언제부터?)이라고요!! 여기가 이집트도 아닌데다 없는 돈 긁어모아서 내려온 주제에 무슨 택시?

물론, 안동 시내 모든 버스가 모여 있는 버스 터미널로 택시 타고 돌아가서 버스 타고 가는 것도 좋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일단 그러려면 하회 마을과는 좀 반대편으로 택시 타고 돌아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었죠.



즉, 어차피 터미널로 돌아가느니 하회 마을 가는 길목으로 가는 편이 훨씬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행분께 "정류장을 찾자"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동행분도 승낙을 해주셨어요. 이로써 방랑자 2명 탄생.



하지만 사실, 뭐, 방랑이랄 것도 없었죠. 하회 마을이야 워낙 유명한 관광지다보니 어디서 버스를 타야하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몇 번 물어보고, 버스 기사분께 몇번 타야하는지 물어보고, 자동차 표지판 참고해서 한 30분 정도 돌아다녀 바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정류장에서 한 20분 정도 기다려서 버스를 타는데 성공한 후 하회 마을로 가는데 이거 참..... 안동 시내에서 생각보다 거리가 멀더군요. 사실 버스를 못 찾으면 하회 마을까지 걸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버스로 약 30분 이상 걸리는데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가더군요. 이거 만약 걸어갔었다면.....



뭐, 어쨌든 버스 탔으니 다행이죠, 뭐. 어쨌든 한참동안 달려가던 버스는 중간에 어떤 마을을 지나쳤습니다. 바로 풍산이죠.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회 마을은 풍산 류씨 집성촌이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풍산을 지나칠 수 밖에는 없었죠. 그런데, 여기서 제가 약간 당황했던 것이.....

"여기도 버스 터미널이 있잖아!!!!"

..... 네. 풍산에도 버스 터미널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회 마을로 가려면 안동에서 내리는 것보다는 풍산에서 내리는 것이 더 가깝다는 이야기가 되죠. 하도 안동 하회 마을, 안동 하회 마을 해서 당연히 안동에서 가는 것이 가까우려니 하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사실 하회 마을이 풍산 류씨 집성촌이라는 걸 생각하면 풍산에서 내리는 쪽이 훨씬 가까운 건 당연한 이치였죠.

뭐, 하지만 사실 저야 안동에 일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고 거기에 풍산행 버스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더불어 사실 그 근방의 도산 서원 같은 다른 명승지를 돌아보려면 안동에서 움직이는 편이 - 버스도 많으니까요 - 낫다고 생각하니 별로 억울하지는 않더군요. 곧 버스는 풍산을 지나 하회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하회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 당시 여왕이 받았던 생일상 차림이나 여왕이 앉았던 의자, 여왕이 사용했던 물품 등을 전시해두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이 이 마을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만큼 확실히 신경을 썼다... 라는 느낌이 절로 나더군요. 아마 하회 마을 방문자라면 꼭 한번씩은 들리게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이제 마을 어귀에 들어섭니다. 여기서부터 이제 각종 고택들과 초가집들이 있는 마을 내부로 들어가게 됩니다만.... 사실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점은....

여기... 조선풍 상점가?
(어허. 유식한 말로 저잣거리라고 하는 것이야(퍽!!))

..... 아니, 뭐,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 관광지니까 - 조금은 기대도 하긴 했다고요. 개인적으로 한복을 좋아하기도 하고(집에서 겨울에는 개량한복 입고 다닙니다) 해서 적어도 갓 쓰신 어르신 한분이라도 지나가기를 바랬었는데.... 그런 분은 안 계시고....



..... 귓가에서 뭔가 소리가..... 이것은 무슨 소리? 아아. 내 로망이 깨지는 소리. 아니. 좌절하면 안 돼. 이거 예상했었잖아. 자, 고개를 돌려. 그리고 옛 선조들의 향취를 느끼는 거야. 자! 저기 전통 방식 그대로 보존된 초가집들로 가득한 마을이 바로 눈앞에 있잖니!!!



식당가 입구라는데?
(그러니까 유식한 말로 주막이라니까(퍽!!))



당신은 이제 그만 들어가주세요!!

.... 뭐, 사실 하회 마을 내부는 거의 식당화 내지는 민박집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뭐, 마을 자체가 사실 워낙 벽지다보니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아무래도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겠죠. 사실 저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긴 했습니다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실제로 교통 역시 그리 편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안동에서 8차례 정도 버스가 오는데 그것 이외에는 대중 교통은 전무. 뭐, 이런 상황에서 생계를 해결하려면 식당업이나 민박업이 발달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도 위안인 것은 비록 식당화 되었다고는 해도 이런 고택들과 초가집은 옛 모습을 어느정도 보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골목 조차도 전통 방식의 흙담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마을 내부는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죠. 즉, 전통 저잣거리에 현대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어떨까.... 에 대한 해답이겠죠. 다만 그 흙담에 각종 낙서가 되어 있는 것은 꽤나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만.... (...... 담에 낙서하면 나쁜 어린이입니다.)

어쨌든 슬슬 고택 순례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영모각(永募閣)이 가장 중요한 곳이겠습니다만.... 그 전에 가볍게 고택 순례를 하려고 했죠. 그런데 고택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글귀!!!

"이 안쪽에는 종손들이 생활하고 계신 곳이므로 관광객의 출입을 금합니다"

두둥!!!!!

......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만한 조치이긴 합니다만(사실 저도 저희 집을 문화재라는 이유로 관광객들이 마구 드나든다고 치면 그리 즐겁지 않을테니까요), 아우우우우. 관광객 입장에서야 아쉬움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관광객 분이 그 아쉬움을 담아 한마디 하시더군요.

"그럼 딸랑 사랑채 하나 보고 끝이네?"

....... 사실이 그렇긴 합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비워놓은 집도 아니고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인데요. 하루에도 엄청나게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집 전체를 개방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그래서 그냥 고택들 돌면서 사랑채들만 열심히 보고 돌아다녔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고택 중 하나인 보물 306호인 입암고택(立巖古宅)입니다. 풍산 류씨 겸암파 대종택이자 서애 류성룡 선생의 부친이신 입암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이라고 불리고 있죠. 사진은 입암고택의 사랑채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고택들을 돌면서 저희는 충효당(忠孝堂)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하회 마을의 고택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고택이자 가장 중요한 고택이기도 하니까요. 충효당은 바로 서애 류성룡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종택입니다. 물론 이 충효당 역시 건물 내부에는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만.... 이 충효당 옆에 서애 선생의 유품을 모아놓은 박물관인 영모각(永慕閣)이 있죠.



사진은 충효당 내부 사진입니다. 좀 비뚤어진 것은 눈의 착각일 따름입니다(우기자). 물론 올라갈 수는 없죠. 다만 건물 안쪽에 전서체로 "충효당" 이라고 적힌 현판이 보이더군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습니다만.... 바로 계단 아래에 적혀 있는 무시무시한 경고문.

올라가지 마시오

...... 아우. 부르투...... 가 아니라, 충효당!! 너도냐!!!

하아. 뭐, 내부 들어갈 수 없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대청 올라가는 것도 안 된다니.... 아우..... (.......)

...... 그래서 그냥 겉모습만 보고 손가락 쭉쭉 빨면서 영모각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충효당, 정면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벽을 따라 도니까 꽤 큰 건물이더군요.



사진이 바로 문제의 영모각.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속았다!!!!

.... 아니, 이름은 상당히 고풍스러운 이름인데 말이에요. 건물은 새거네요. 알고 봤더니 77년인가 새로 지은 건물이라네요(그래도 약 30년된 건물인데). 그것도 사실 예전에 양옥식으로 지었다가(!!!!!!!) 주위 미관이랑 안 어울린다고 다시 헐고 한옥식으로 고친 거래요.

그런데, 그것까지는 좋은데.... 뭔가 색감이 고풍스럽지 않아!! 저 상큼한 빨간색 기둥은? 저 푸르른 녹색은? 뭐지? 저 원색 계열의 한옥은? 페인트 다시 칠했다는 느낌이 물씬물씬 드는 저 원색의 향연은 도대체 무엇? 다시 한번 로망이 후두두둑 무너져 내리더군요. 뭐, 여기 와서 로망이 한두번 무너진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서애 선생의 유품을 보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건물 외부는 어찌 되었건 내부에는 서애 선생이 생전 받았던 교지들과 임진왜란 당시에 입었던 옷등 여러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건.....

징! 비! 록!(두둥)

아시는 분은 다 아실 바로 그 책. 징비록! 서애 선생이 자신이 겪은 왜란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적어놓은 바로 그 책! 그것을 저렴한 가격, 단돈 1만 5천원에 모신다는 글귀가 바로 눈에 들어오더군요. 당연히 국보인 징비록 원본은 아니고 그 내용을 담은 책이겠지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귓가에 들려오는 그 분의 소리.

질러라질러라질러라질러라.

아니야. 안 돼. 없는 돈 겨우 긁어서 내려와 놓고 무슨!!

어머나저건질러야해.

...... 속지마라. 저건 사실 동네 책방 가도 살 수 있는 거잖아!! 지금은 물러나라!!!

지르지아니하니후회하면어쩌리오

으아아아아아아악!!!

이렇게 제 마음 속에서 그 분과 제 이성이 철저한 혈투를 벌인 지, 어언 10분, 결국 제 이성이 가까스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성이 저를 설득시킨 강력한 한 마디.

"..... 너 저거 사면 오늘 점심값 없다."

...... 우우우우우.....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 안녕히!! 징비록!! 결코 간고등어가 먹고 싶어서 - 아니, 사실 맞지만 - 너를 버린 건 아니야. 언젠가 언젠가 인터넷 서점에서 저렴하게 나온 걸로 골라서 사줄께~~~.

저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영모각을 뛰쳐 나왔습니다.

이렇게 제 하회 마을 내부 관람은 끝을 맺었습니다.

사실 하회 마을 내부는 거의 식당화 된 곳이 많은데다 사택에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전통의 향기를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뭐, 상업주의에 물들었다.... 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관광지니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해야겠죠.

다행히도 현재 따로 근처에 식당가를 만들어 하회 마을 내부에 있는 식당들을 모두 이전시키고 대대적으로 보수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 이후에 한번 다시 와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