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윳딘입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 사실 이곳에 와서 시리아와 레바논을 자주 돌아다녔는데 그 유적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십자군 시대의 유적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사실 시리아는 십자군 시대의 주 전장이 되었던 곳입니다. 우선 1차 십자군 때, 십자군이 터키에서 시리아 북부를 지나 레바논 해안 도로를 거쳐 들어가 예루살렘을 점령했고, 이후 터키의 안티옥, 레바논의 트리폴리스, 티레, 아크레 같은 경우는 십자군 공국들이 세워졌던 도시이거나 십자군 세력권이었던 도시인지라 당연히 십자군 관련 유적이 많을 수 밖에 없죠.

한국에서도 꽤 관심이 많았습니다만.... 역시 이곳에 와서 직접 유적들을 보고 또 다시 십자군 전쟁 관련 책들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니 더더욱 관심이 땡기는 건 역시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일본에서 십자군 전쟁 관련 서적들을 대거 구입해볼까.... 하는 생각도 조금 생길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일단 시리아 유적 중 가장 먼저 이 크락 데 슈발리에, 아랍어로는 깔루아툴 히슨(히슨 알 아크라드)을 가볍게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사진부터 가볍게 감상하시죠.



내부에 있는 교회(바이바로스가 점령한 후에는 모스크로 바뀝니다) 앞 복도입니다. 천장의 구조가 상당히 아름답죠. 이런 구조는 시리아나 레바논에 있는 십자군 시대의 성들에 꽤 많이 나타납니다.



연병장(?)이라고 해야겠군요. 당시 군인들이 사열하던 광장입니다. 가보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탁 트인 공간을 자랑합니다.



내성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저 건물 안쪽은 말이 지나다니던 곳이죠. 십자군의 대표 병종이 중장기병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 다니는 곳 역시 있었겠죠.



내성의 왕의 탑에서 함맘(욕탕)을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중앙의 저 구멍들이 바로 함맘이죠. 참고로 함맘하면 목욕탕이라는 뜻도 있지만 화장실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외성에서 내성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크락 더 슈발리에는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험난한 지형 덕분에 적이 공격하기가 상당히 어렵죠. 특히 다음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성벽이 비스듬하게 지어져 있어 지진에도 상당히 강력한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적이 파성추등으로 공격해 성벽을 깨뜨리기도 어렵게 만들어져 있습니다(실제로 입구 역시 공성병기가 들어오기엔 꽤 좁게 만들어져 있죠).



외성과 내성 사이에 흐르는 해자입니다. 뭐, 사실 이 해자는 방어로서의 역할도 있겠지만 식수 공급의 역할도 꽤 컸다고 봐야할 듯 합니다. 사실 이 요새 자체가 상당히 험한 산지에 위치해 있고.... 외성 자체도 공략하기가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이 지역 전투의 특징 중 하나가 물을 확보할 수 없으면 아무리 하드웨어가 튼튼하다고 해도 버티지 못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 중 그렇게 무슬림군이 승리한 가장 유명한 케이스가 살라딘을 예루살렘의 해방자로 만들어 준 히틴 전투죠. 어쨌든 그런 면에서 이 해자는 방어 역할과 동시에 식수 공급이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외성을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제가 있는 위치도 외성입니다. 외성 역시 상당히 견고한 편입니다. 

사진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크락 더 슈발리에는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보존도가 상당히 뛰어납니다. 실제로 70년대까지 사람이 거주했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니까요(정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사실 이 시기 성들이 다 그렇습니다만... 상당히 내부가 복잡합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 길을 들어갔다가는 길을 헤메이기 일쑤죠. 참고로 내부의 길은 이렇습니다.



여기는 부엌 쪽입니다. 하지만 이런 길이야 좀 넓은 편이죠.



이런 길도 있습니다. 지금 미궁으로 들어가는 중(!!!!!).

뭐, 사진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요(누구 맘대로!!). 이제는 이 성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죠. 

이 성은 본래 시리아에 살고 있던 쿠르드족이 망을 보던 곳이라고 해서 쿠르드성이라고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성은 1031년에 알레포의 성주가 지은 성이었죠. 그러던 중, 1099년에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에 점령, 잠시동안 십자군의 거점이 되었다가 버려집니다.

1099년 예루살렘 함락 후, 점령지에 남은 십자군은 각각의 나라(예루살렘 왕국, 에데사 백국, 안티오케이아 공국, 트리폴리 백국 - 눈치채셨겠지만 예루살렘 왕국이 종주국이 되고 나머지 3국은 제후국이 되는 형식이죠)를 세워 점령지를 다스리게 됩니다. 이 중 안티오케이아 공국의 탕그레드가 크락 데 슈발리에를 1110년에 재점령하게 되죠. 그 후, 1142년, 이 성은 트리폴리스 백 레몽에 의해 그 유명한 성 요하네스 기사단(혹은 구호 기사단, 병원 기사단, 알 오스피타르)에 양도되어 성 요하네스 기사단의 주 거점 중 하나로 활용이 됩니다.

(주 : 성 요하네스 기사단은 후일 거처를 로도스 섬으로 옮겨 이후 로도스 기사단으로 불리게 되고 이후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추방되어 떠돌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에 의해 몰타에 근거지를 삼게 되어, 몰타 기사단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후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되면서 각지로 분산, 군사적 성격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현재는 인도주의적 종교 단체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활동하고 있죠. 영토는 없지만 독자 헌법을 가지고 있어 유럽 국가들은 이 기사단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몰타 기사단 홈페이지(당연히 영어)는 여기를 누르시면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성을 양도받은 성 요하네스 기사단은 이 성을 철벽의 성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는데 당시 이 지역에는 지진이 꽤 다발했고, 거기에 위치 상, 무슬림 공국들과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는지라 무슬림 군의 공격을 자주 받을 수 밖에 없었으니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겠죠.

그러나 이 성 요하네스 기사단은 이 와중에서도 외벽을 짓고 망루를 세우고, 해자를 만들어 도개교까지 세우면서 이 성을 진짜 철벽의 성으로 만들어갑니다(현재는 외성 쪽 해자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1170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성의 증축이 완료됩니다.

하지만 1187년, 살라딘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이듬 해에 살라딘의 침공을 받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을 함락하기 전까지 티레를 제외한 시리아(참고로 현재의 시리아가 아닌 대 시리아, 즉,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터키 남부등을 통틀어 이야기 하는 겁니다)의 십자군 점령지를 싹쓸이한 살라딘이 시리아 중부에 떡 하고 자리 잡고 있는 이 크락 데 슈발리에를 남겨둘 이유가 없었죠.

이 전투에서 살라딘은 외성을 돌파하는 등, 전과를 올리긴 합니다만.... 시리아의 정세가 불안정해져 바로 철수하게 됩니다. 물론 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살라딘의 판단도 있었죠. 실제로 1189년부터 제 3차 십자군이 참가한 아크레 공방전이 벌어지게 되고, 이 때부터 살라딘은 사자심왕 리처드와의 전쟁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쨌든, 살라딘의 공격을 막아낸 성 요하네스 기사단과 크락 데 슈발리에는 확실히 십자군의 보루로 자리매김 하게 됩니다. 덕분에 5차 십자군 때의 주력군인 헝가리 왕 앙드레 5세가 성의 외벽을 강화하는 등, 십자군의 주력 요새에 걸맞는 대접을 받게 되죠.

하지만 몽골의 시리아 침공이 이들의 운명을 몰락으로 이끄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1260년 훌레구의 몽골군이 침략할 때 십자군 국가들은 아크레를 제외(아크레는 중립을 표방했습니다만 이후 아인 잘루트 전투를 앞두고 맘루크 군이 아크레를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죠)하고는 대부분 몽골을 도와 시리아 침공에 일조하게 됩니다. 이는 몽골군 총사령관 훌레구의 부관인 키트 부카가 네스토리우스 교(경교) 신자였기 때문이죠. 이 때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 왕국의 하이톤과 안티오케이아 공국의 보에몽 6세, 그리고 성 요하네스 기사단 역시 적극적으로 몽골군을 돕습니다. 이 때 압바스 왕국이 멸망하게 되고 알레포, 다마스커스 등 시리아의 대도시들이 차례대로 몽골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죠.

하지만 다마스커스 전투 후, 훌레구는 형인 몽케의 사망으로 인한 계승 문제 때문에 돌아가고, 시리아는 키트 부카가 맡게 되죠. 당시 이슬람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맘루크 조는 아크레의 암묵적 협조하에 공격에 나서고 7월 3일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맘루크 조의 쿠트즈와 바이바르스에게 몽골군이 패배하고 키트 부카는 살해당하게 됩니다. 이후, 쿠트즈는 시리아 탈환에 나서 다마스커스, 알레포를 재탈환하게 됩니다.

이 때, 정변을 통해 쿠트즈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바이바르스는 1268년 훌레구가 사망한 틈을 이용, 당시 몽골군의 편을 들었던 아르메니아 왕국과 안티오케이아 공국에 대한 복수를 시작해 주민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파괴합니다. 이로써 두 나라 모두 멸망의 길을 걷게 되죠. 그리고 다음 목표를 바로 이 크락 데 슈발리에로 잡게 되죠.

이 크락 데 슈발리에 전투에서 바이바르스는 교란책을 사용합니다. 사실 포위된 성 요하네스 기사단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스폰서(!!!)인 트리폴리로부터의 원군을 기다리며 항거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역으로 이용해 트리폴리에서 이들에게 투항을 권고하는 편지를 쓴 것처럼 해서 성 안으로 보냅니다(말하자면 위서의심?).

이에 성을 지키던 성 요하네스 기사단은 결국 바이바르스에게 투항하고 퇴각합니다. 이후, 이 성은 성 요하네스 기사단의 다음 거점인 마르카브 성 공략전과 십자군 최후의 도시, 아크레 공략전 때 맘루크 조 술탄 칼라운에 의해 맘루크 군의 전선 기지로 활용이 됩니다. 물론 성 내부의 교회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고요. 그리고 이 아크레 공략전에서 맘루크 조 술탄 칼라운에게 승리가 돌아가면서 십자군은 동방에서 축출되죠.

뭐, 역사적으로는 이렇습니다만, 일단 이 크락 데 슈발리에의 가장 큰 의의라면 "가장 보존이 잘 된 십자군 성채" 라는 점이죠. 특히 당시에 사용하면 부엌이나 함맘의 흔적들, 물을 담아뒀던 구덩이 등등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 십자군들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거기에 그런 것 차치해 두더라도 일단 경치가... 경치가 아주 끝내주는 곳이죠. 망루에 올라 주변 경치를 바라보면 탁 트인 사방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줍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로 유명한 로렌스 경도 극찬을 했다고 하고,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의 모델이 바로 이 크락 데 슈발리에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자랑하니까요.

어쨌든 이로써 간단하게 크락 데 슈발리에 소개를 해봤습니다. 나름대로 최대한 사진을 올려봤습니다만, 어떤가요? 다음 포스팅도 나름대로 열심히 사진이랑 같이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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