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윳딘입니다.

... 1주간 많이 격조했습니다. 사실 요즘 집을 이사를 하게 되어 그 때문에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집을 구하긴 했습니다만.... 문제는 그동안 사 놓은 짐들이 워낙 많아서 이걸 옮길 걱정 때문에 꽤 골치 아픈 상황입니다. 그래도 뭐, 이번 겨울은 작년처럼 추위에 벌벌 떨면서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목을 보시고 조금 "어라?" 하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시리아 생존기" 가 아니라 "문화 유산 이야기" 로 제목이 바뀌었죠. 사실 그동안 꽤 고민을 했었던 부분인데요. 사실 "생존기" 는 제가 이곳 시리아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글을 적어왔었죠.

하지만, 지난번에 시리아 문화 유산인 크락 데 슈발리에, 싸이다 자이납에 대한 글을 적고 나서.... 뭔가 이런 문화 유산 관련된 글이 과연 "생존기" 라는 타이틀에 맞을지.... 에 대한 고민을 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이번 기회에 문화 유산 관련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어서 아예 문화 유산 소개를 따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뭐, 물론 문화 유산들이야 론니 플래닛 같은 가이드 북에도 꽤 설명이 잘 나와 있는 편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가이드 북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 지난번에 "블로거! 네 꿈을 펼쳐라" 에 "시리아 문화 유산 답사기" 로 신청을 했었습니다만, 워낙 좋은 기획들이 많다보니 깔끔하게 낙방을 했었죠.

그렇다고는 해도 원래 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일이었으니 한번 깔끔하게 시작해보겠습니다. 물론 제 게으름이 가장 큰 적이 되겠습니다만.... 그래도 일단 시작해보도록 하죠.

세 번째 소개드릴 곳은 두 번째 소개 드렸던 곳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시아파 사원인 싸이다 루까이야(Sayyeda Ruqaiyya)입니다. 당연히 싸이다 자이납과 마찬가지로 시아파의 성지죠.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넵. 루까이야라는 분 역시 여성분입니다. 전에 싸이다 자이납에서 이 앞에 싸이다가 경칭이라고 말씀드렸었죠(그 때 사이드라고 적지 않았었나? 하시는 분들.... 넵. 맞습니다. 하지만 원래 정확하게는 사이다트라고 했었죠. 요걸 좀 더 원 발음에 가깝게 고쳤습니다. 그런고로 앞으로는 그냥 싸이다로 봐주세요). 그런고로 뒤에 루까이야는 당연히 사람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들게 되는 의문점. 이 루까이야라는 분은 또 누구신가.... (.........)

전에 사피윳딘의 시리아 문화 유산 이야기 - 시아파 성지 싸이다 자이납에서 카르발라 전투에 대한 언급을 드렸던 적이 있죠? 4대 칼리프 알리의 둘째 아들인 후세인이 시리아의 우마위야 왕조의 야지드의 병사들에게 전멸당한 사건이요. 바로 이 때 사망한 후세인의 막내딸이 바로 루까이야입니다. 그러니까 싸이다 자이납은 싸이다 루까이야의 고모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 분의 진짜 이름은 루까이야가 아닙니다. 사실 이 분의 진짜 이름은 파티마입니다만, 이렇게 되면 무함마드의 딸이자 루까이야의 할머니인 파티마 여사와 헷갈리게 되죠. 그래서 실제 이 분을 부를 때는 루까이야 또는 수카이나(Sukayna), 사키나(Sakinah)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이 분에 대해서 조사를 할 때 상당히 애로사항이 꽃피었습니다. 어떻게 이름은 다들 다르게 나오는데 내용은 다들 어찌 그리 똑같은지.... (.................). 아, 참고로 루까이야, 수카이나는 아랍어고 사키나는 페르시아어라고 하더라고요. 참고로 이 글에서는 그냥 루까이야로 통일합니다(귀찮아요).

이름 이야기는 일단 이 정도로 하고, 시아파의 전승에 따르면 이 분은 카르발라 전투에서 명을 달리한 후세인의 막내딸로 카르발라 전투 당시의 나이가 5세 정도였습니다(주 : 정확한 나이를 체크하기 어려운 것이 이슬람력인 히즈라력과 현재 우리들이 사용 중인 그레고리력하고는 편차가 좀 있습니다. 히즈라력으로 1년은 354일이죠).

즉, 후세인이 49세 때 얻은 늦동이 딸이다보니 얼마나 귀엽겠습니까. 그래서 후세인은 이 막내딸을 엄청나게 예뻐했고, 루까이야 역시 아버지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쿠파로 떠나는 행렬 역시 함께 가게 되었죠.

하지만 그 여행은 어린 루까이야에게 끔찍한 결말을 보여주게 됩니다. 아버지인 후세인을 비롯해 오빠인 알리 브라더스(주 : 후세인의 아들들의 이름은 모두 후세인의 아버지인 알리의 이름을 딴 알리였습니다)를 모두 카르발라에서 잃어버리게 되죠. 전투가 끝난 후 우마위야 병사들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숨어있던 천막 안으로 들어와 약탈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루까이야의 귀걸이도 약탈당하게 되는데 이 병사는 어린 루까이야가 귀걸이를 찬 상태에서 잡아당겨 루까이야의 귀를 찢어버립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녀는 귀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찾아 전쟁터로 뛰어나가죠.

이 때 캠프 안에 있던 가족들이 그런 그녀를 쫓아 전쟁터를 닥치는대로 뛰어다니게 되는데, 가족들이 그녀를 찾아냈을 때, 그녀는 죽은 아버지 시신의 가슴에 안겨 행복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녀는 살아남은 가족들과 함께 다마스커스로 연행됩니다. 그 과정은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죠. 소녀는 갈증과 굶주림, 추위에 시달리며 다마스커스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마스커스에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 감옥은 바로 아버지 후세인의 목이 안치되어 있는 장소의 바로 건너편이었습니다. 즉, 소녀는 감옥에서 아버지의 잘린 목을 보며 지내야만 했죠. 그리고 결국 루까이야는 얼마 못 가 감옥에서 그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런 루까이야의 비극은 시아파 무슬림으로 하여금 카르발라의 비극을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이 카르발라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시아파의 축제인 아슈라에서는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강하게 때립니다. 당시 후세인과 그 가족들이 당했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때 그들을 구하지 못했던 선조들과 그 피를 이어받은 자신들을 책망하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건 시아파의 전승 이야기고.... 사실 루까이야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분분합니다. 위에서 적었던 것처럼 5세 때 다마스커스의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연금에서 풀려난 후 메디나로 돌아가 68세까지 메디나에서 살았다는 이야기까지 꽤나 이야기가 많죠. 

하지만 적어도 루까이야가 다마스커스에 묻혔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루까이야가 묻힌 곳을 사원으로 개축한 곳이 바로 이곳, 싸이다 루까이야라는 것이죠. 원래 루까이야가 묻혔던 무덤 터는 홍수에 쓸려가버려 그 시신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당연히 이 사원의 안에는 루까이야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로 루까이야의 아버지인 후세인의 목이 바로 건너편인 우마위야 사원에 지금도 안치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루까이야가 감옥에서 죽은 아버지의 목을 보면서 지냈다는 전승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죠(주 : 우마위야 사원에는 후세인 이외에도 또 한 사람의 중요한 인물, 세례 요한의 목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 세례를 준 그 세례 요한의 목이죠.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우마위야 사원 소개 때 적어보도록 하죠). 즉, 싸이다 루까이야는 올드 다마스커스의 중심인 우마위야 사원 옆에 있죠. 우마위야 사원의 정문에서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싸이다 루까이야의 정문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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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싸이다 루까이야의 정문입니다. 여기도 역시 남녀의 출입구가 다릅니다. 남자는 바로 정면의 문으로 여자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연히 이슬람 사원이기 때문에 들어갈 때는 저렇게 히잡을 착용해야 합니다. 여기에도 정문에서 여성용 히잡을 무료로 대여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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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로 들어오면 바로 이렇게 양탄자가 깔린 정원이 나옵니다. 바로 정면에 있는 문이 바로 입구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은 사람들의 휴식처이기도 합니다. 양탄자 위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꽤나 정겹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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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이다 루까이야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저렇게 열려 있는 정원의 지붕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넵, 개폐식입니다. 그러니까 돔 구장처럼 지붕을 개폐할 수 있게 되어 있죠. 사실 저는 열려있는 모습만 봤습니다만.... 비가 오거나 하면 닫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비 오는 날 한번 오면 지붕 위로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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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입구에 걸려 있는 루까이야의 가계도입니다.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이시라면 아마 가계도의 위쪽은 금방 이해가 가실 듯 합니다. 아담부터 노아, 아브라함에서 유태인의 조상인 이삭과 아랍인의 조상인 이스마엘로 갈린 후, 이삭의 계보는 예수까지 이어집니다. 이 부분은 아마 대부분 익숙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중히 여기는 이스마엘의 계보는 익숙하지 않으실 겁니다(사실 저도 뭐 이쪽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뭐, 어쨌든 이슬람은 이스마엘 계보에서 그 자손인 아드난을 거쳐 무함마드의 할아버지인 압둘 무딸립에 이릅니다. 그리고 압둘 무딸립은 두 아들, 압둘라와 아부 딸립을 낳죠.

그리고 압둘라의 아들이 예언자인 무함마드입니다. 이 무함마드의 딸이 바로 파티마죠. 한편 압둘 무딸립의 다른 아들 아부 딸립은 아들인 알리를 낳는데 이 사람이 바로 4대 칼리프 알리입니다. 그리고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아부 딸립의 아들인 알리가 결혼을 하게 되죠. 즉, 사촌 동생에게 자신의 딸을 준 것이죠.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데 바로 하산, 후세인, 자이납입니다. 그리고 후세인에게서 오늘의 주인공 루까이야가 태어난 것이죠. 이 가계도는 그런 관계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 가계도.... 약간 이상한 것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한번 각 인물들의 생몰년도와 나이를 자세히 보세요. 자세히 보셔야 할 곳은 바로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나이와 파티마의 자식 세명의 생몰년도입니다.

파티마는 히즈라력 11년(632년), 18세의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아들인 하산은 히즈라력 3년(625년)에 태어난 것으로 나와 있죠.

..... 뭐가 이상하냐... 하고 물으시는 분들.... 잘 보세요. 히즈라력 11년 당시 파티마의 나이는 18세. 그런데 큰 아들은 632년에 출생했죠. 그럼, 파티마가 첫 아들인 하산을 낳았을 때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여러분은 지금 사피윳딘의 수학 이야기를 보고 계십.... (퍽!!))

..... 그러니까 파티마가 사망했을 때가 632년, 첫 아들 하산이 태어났을 때가 625년이니 632-625=7, 즉, 죽기 약 7년 전에 첫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렇다면 파티마가 18세 때 사망했으니 첫 아이인 하산을 얻었을 당시의 파티마의 나이는 18-7=11. 즉, 11세 때 첫 아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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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11살 때 아이를 낳았다고!!!!! (두둥)

넵. 가계도에 적혀 있는 년도대로라면 파티마는 무려 11세 때 아이를 낳은 것이 됩니다. 도대체 이것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세 꼬맹이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두둥)

....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꽤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조금 진정하시고(누가 흥분시켰는데!!)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사실 이 당시의 생몰년도의 기록은 불완전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위에서도 적었습니다만, 이 사원의 주인공인 루까이야 역시 이 가계도에는 후세인이 사망한 히즈라력 61년(681년)에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만..... 실제 루까이야의 사망년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즉, 5세 때 다마스커스에서 사망했다는 설도 있고 68세 때 메디나에서 사망했다는 설도 있죠. 이런 불확실한 내용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파티마의 경우는 사망년도는 대부분 무함마드가 사망한 히즈라력 11년(632년)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태어난 년도가 불확실합니다. 605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615년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이거 빼보면 사망 시 나이는 27세나 17세가 됩니다(뭐, 1년 오차는 히즈라력과 그레고리력 차이 문제로 보여집니다만... 일단 넘어가죠).

알리와의 결혼은 대충(!!!) 622년 정도였겠죠. 결혼 생활이 약 10년 정도였다고 했으니까요. 두 사람의 결혼은 파티마 나이 9세 혹은 17세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첫 아이 하산을 얻을 당시 파티마의 나이는 11세 혹은 19세가 되는 것이죠(헥헥. 여러분은 그러니까 지금 "사피윳딘의 수학 이야기 - 비례식편" 을 보고 계시.... (퍼퍼퍼퍽!!)).

자,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사실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아요. 여자 나이 19세면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실제로 지금도 이곳 여성들은 10대 후반에 시집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0대 초반이면 대부분 시집을 가죠.

문제는 전자. 11세 때 아이를 낳았을 경우입니다. 일단 이 경우는 이곳 싸이다 루까이야에 당당히 붙어있다는 것이죠. 즉, 어찌보면 시아 이슬람에서 18세 사망론 = 11세 출산론(응?)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는 겁니다만.... 도대체 왜일까요?

일단 이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자세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슬람 이전 시대의 아라비아 사막은 많은 부족들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과 이합집산이 꾸준히 이루어지던 곳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 부족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다른 부족을 공격해 멸족시키기도 하고 다른 부족과 연합을 해서 공존을 꾀하기도 했었죠.

이런 상황에서 부족과 부족이 연합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방식은 바로 "정략 결혼" 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정략 결혼" 은 세계 역사에서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아랍 유목민들만의 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실제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 사이에서 이런 "정략 결혼" 은 부족을 지키고 그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죠.

이런 "정략 결혼" 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결혼 당사자의 의견이나 이익보다는 결혼 당사자의 집안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실제 "정략 결혼" 의 경우, 결혼 당사자의 의견은 거의 무시되는 경우가 많죠. 애시당초 목적이 그 결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인 이득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결혼 당사자는 그냥 집안이나 부족의 의견에 따라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결국 "사람을 보고"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 을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이 바로 "정략 결혼" 이라는 것이죠. 때문에 "정략 결혼"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 당사자가 아니라 그 집안, 또는 부족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 당사자의 연령은 사실 고려 사항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 실제로 파티마는 결혼하기 전 이후 아부 바크르, 오마르, 알리에게 청혼을 받습니다. 물론 아버지인 무함마드에게 결혼을 신청한 것이죠. 만약 9세 때 알리와 결혼한 것이 맞다면, 이 9살 꼬맹이랑 결혼하려고 50대 아저씨부터 20대 청년까지 달려들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아부 바크르는 자신의 6살짜리 어린 딸인 아이샤를 무함마드와 결혼시킵니다. 처인 카디자을 잃은 무함마드에게 재혼을 권고한 아부 바크르는 그와 동시에 자신의 딸을 무함마드에게 시집보낸 것이죠. 당시 무함마드의 나이가 53세였습니다만 아부 바크르는 자신의 6살짜리 딸을 시집보냄과 동시에 무함마드의 딸인 9세 -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실이라면 - 파티마와 결혼하려 한 것이죠.

.... 이들이 이렇게 9살 꼬맹이랑 - 물론 정말 9세였다면 - 결혼하겠다고 달려든 이유는 단 하나, 이슬람 공동체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무함마드가 가장 아끼는 딸인 파티마와 결혼한다는 것은 바로 무함마드의 강한 신임을 증명하는 것. 즉, 그것은 추후 후계자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만약 11세에 아이를 낳은 것이 맞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이 문제도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더더욱 간단하게 이해가 가능한 문제입니다. 

권력자에게 시집보낸 딸이 아이를 낳는다면? 그만큼 외척으로서 더 많은 권력이 들어오게 되는 첩경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든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마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다시 아부 바크르를 예로 들자면, 이 분은 6살짜리 딸 아이샤를 무함마드에게 시집보냈습니다.

당시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와 마찬가지로 50대에 접어든 나이. 더군다나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는 정적인 알리에게 빼앗긴 상태. 그렇다면 아부 바크르가 다음으로 기대할만한 것은 바로 딸인 아이샤가 무함마드의 아이를 낳는 것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자 나이 6세는 아이를 낳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겠죠. 그래서 아이샤가 초경을 치룰 때까지 기다렸을 겁니다. 알 부하리의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에 따르면 "6세에 결혼하여 9세에 결혼이 완성되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실 이슬람에서 결혼을 완성한다는 것은 바로 성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볼 때 두 사람의 첫 결합은 아이샤가 9세가 되던 해라고 보아도 무리는 없으리라 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여성의 평균 초경 연령은 약 11~13세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초경 연령은 개인차가 있으니 좀 빠르긴 합니다만 9세 초경도 완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여러분은 사피윳딘의 보건학 교실을 보고 계십.... (퍼퍼퍼퍼퍼퍽!!!)).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7세 여아가 출산을 했던 일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기도 했었고요.

뭐, 지금식으로 생각하면.... 완전히 콩가루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정략 결혼" 이라는 것의 속성이 정치적인 부분을 우선시하는 만큼 다소의 문제 - 혼인 당사자의 연령 같은 - 는 무시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사회 상황이 이 "정략 결혼" 이 만연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이슬람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사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결국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고로 18세 사망론을 당당하게 사원에 걸어놓은 것은 일단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 만연한 상황이었다" 라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작용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렇게 길게 써놓고?) 개인적으로는 파티마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18세 사망론을 적어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보아라. 파티마님께서는 가장 아름다우실 때 안타깝게도 세상을 등지셨다. 그만큼 아버지의 죽음이(주 : 무함마드 사망 후 6개월 정도 후에 파티마가 사망합니다) 가냘프고 아름다운 파티마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아아. 안타까워라. 아아. 장미~ 장미~는 화사하게 피고 장미~ 장미~는 순결하게 지네~(응?)"

....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구절이 있습니다만 그리 크게 신경쓰시지는 말아주세요(라기보다 요즘 젊은 분들은 못 알아채실지도...)).

.... 이야기가 어쨌든 엄청나게 삼천포로 흘러가버렸습니다만(여러분은 사실 사피윳딘의 아랍 이야기 - 이슬람의 정략 결혼편을 보시고 계십....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어쨌든 저 가계도를 보고 정말 꽤 여러가지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사실 솔직히 저걸 찍었을 당시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아래층 유학생에게 보여줬을 때, 그 친구가 이걸 눈치채는 바람에 한동안 이거 관련자료 찾느라 죽는 줄 알았.... (..................).

흠흠. 어쨌든 머리 아픈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고(네가 했잖아!!!) 슬슬 사원 안으로 들어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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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아파 사원답게 멋들어진 샹들리에가 반겨줍니다. 참고로 이 싸이다 루까이야는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복도가 나오는데 이 복도를 중심으로 왼쪽은 루까이야의 무덤이 있는 구역이고 오른쪽은 예배 구역입니다. 그런데 양쪽 구역의 장식이나 색깔이 완전히 틀리죠. 지금 이 샹들리에가 있는 구역은 바로 무덤 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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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구역 전경입니다. 예전 싸이다 자이납처럼 번쩍이지는 않습니다만, 푸른색 베이스의 알록달록한 페르시아 풍 문양이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중앙에 보이는 것이 바로 싸이다 루까이야의 무덤입니다.

그런데, 예전 싸이다 자이납 관련 포스팅에서 제가 맨 마지막에 보여드렸던 올리브 비누(!!!!) 있잖습니까. 그거 여기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거 비누 아니잖아!!!"

.... 비누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비누가 아니라 아예....

"돌! 덩! 어! 리!" (강마에 풍으로 읽어주세요)

....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 돌덩어리였습니다. 예전에 싸이드 자이납에서 만졌을 때는 분명히 비누였는데.... 이번에는 다들 돌덩어리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동그란 벽돌 비슷하게 구워버린 거에요.

.... 참고로 싸이드 자이납도 이제는 완전히 돌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예전에 포스팅 한 후에 한번 더 가봤는데 다들 벽돌이 되어있더라고요.

.... 이는 바로 기도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음모!!!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 죄송합니다. 짱돌은 제발 그만 던져주세요..... (......................).

.... 뭐, 사실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이마에 굳은 살이 박힌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기도를 그만큼 많이 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짱돌은 이마에 굳은 살을 더더욱 빨리 박히게 해서 보다 신실한 무슬림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 가 아닐까요?

.... 그럼 지난번에는 왜 비누?

.... 아아, 진실은 저 너머에..... (BGM : X파일 주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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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가 없으면 시아파 사원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이 복도는 바로 무덤 구역과 예배 구역을 연결하는 복도입니다. 사진 왼쪽의 문이 바로 입구로 저 안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무덤 구역이고 지금 제가 이 사진을 찍은 곳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예배 구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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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구역입니다. 무덤 구역을 청자 풍이라고 한다면 예배 구역은 완전 백자 풍입니다. 역시 페르시아 풍의 천정 무늬들이 바로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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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천정 무늬가 확실히 눈에 들어왔습니다(그냥 확대해서 찍은 거 잖아!!!). 화려한 샹들리에를 중심으로 백자 예술품을 보는 듯한 느낌의 다각형 천정이 상당히 입체적인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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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부 벽면입니다. 싸이다 루까이야 사원의 예배 구역의 벽면은 사방이 모두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요. 이쪽은 입구에서 정면의 벽면입니다. 벽돌 문양이 주위의 문양과 상당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또한 작은 샹들리에와 정면의 창문이 상당히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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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방향 바꿔 몇 걸음 움직였을 뿐인데 분위기가 위쪽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위쪽이 자연스럽게 벽돌 문양에 녹아드는 느낌이라면 이쪽은 순백의 궁전이라는 느낌이랄까요? 갓 결혼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 같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순백색을 베이스로 하는 아름다운 느낌입니다.

이렇게 싸이다 루까이야는 각 구역에 따라 그 분위기가 완전히 틀려지기 때문에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를 맛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천정의 무늬나 벽의 무늬들과 그 색깔들을 감상하시면서 그 시시각각 바뀌는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바로 이 싸이다 루까이야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자,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사원의 외부 모습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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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꼬? 이건?

............................................... 자, 이제 외부 전경을 보여줘......... (.................................)

......... 라고 하셔도.......

..... 이것이 한계입니다...... (훌쩍)

싸이다 루까이야가 위치해 있는 곳은 바로 올드 다마스커스. 올드 다마스커스 내부는 대부분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 사진을 찍은 위치가 정말 유일하게 싸이다 루까이야의 돔 부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위치입니다만.... 보시다시피 완전히 골목길..... (.................)

..... 담으로 둘러쌓인 넓은 공터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싸이다 자이납과는 달리 좁디 좁은 올드 다마스커스의 그 좁은 골목 사이에 입구만 저렇게 빼꼼하게 나와 있는지라 저 위의 돔 부분은 사원 안에서도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싸이다 루까이야 자체가 한일자로 길게 지어진 후, 그 앞쪽에 공터가 길게 나뉘어져 있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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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사원 내부의 정원 공터 구역입니다. 넓은 건 아닙니다만, 한일자로 길게 지어진 건물인데다 구역별로 구분이 되어 있다보니 정원 역시 이렇게 작은 공터로 나뉘어져 있죠. 저 위에 지붕은 열려있습니다만.... 역시 내부에서 이슬람 사원의 상징인 돔을 볼 수는 없습니다.

..... 그런데 밖으로 나오면..... 바로 시장이다보니..... 좁아터진 느낌 + 시끄러운 소리에 가슴이 바로 답답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싸이다 루까이야 안은 천상의 세계 같은 느낌인데 밖으로 나가면 현실 세계로 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이곳 싸이다 루까이야는 어린 소녀 루까이야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아름다운 사원입니다. 시리아에 오시면 꼭 한번씩은 들러보시는 우마위야 사원의 바로 근처에 있으니 다마스커스 외곽에 위치해 가기 엄청 힘든 싸이다 자이납과는 달리 쉽게 들리실 수 있을 겁니다.

가는 방법은 우마위야 사원 정문에서 살라훗딘 묘지(입장권 파는 곳)쪽으로 쭉 가신 후에 오른쪽으로 꺾어 약 100미터 정도 골목으로 쭉 가시면 바로 위 사진의 정문이 나타납니다. 그리로 들어가시면 바로 싸이다 루까이야의 아름다움을 겪으실 수 있어요. 참고로 사원 내부로 들어가실 때는 신발을 맡겨두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 신발을 맡기신 후 들어가셔야 하니 참고하세요.

.... 다음에는 시리아 다마스커스 오시면 반드시 꼭 한번씩은 들려보시는 우마위야 사원 이야기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마위야 사원에는 루까이야의 아버지인 후세인의 목과 예수님께 세례를 드렸던 세례 요한의 목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물론 해골 상태로 안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잘 포장되어 있으니 너무 겁먹지 마시고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따로 적도록 하죠.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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