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소개

2012.02.14 19:40

عبدالوهاب 조회 수:4436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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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커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답게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마스커스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인 언급은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였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마리( B. C. 2500년) 왕국과 잠시 뒤에 등장한 에블라 왕국의 역사 속에 언급되었다.

 

다마스커스 지역을 둘러싸고 이 지역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많은 쟁탈전이 고대로부터 있어 왔는데 그 중 처음으로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사람들은 아모리(Amorite-바빌로니아 제국 건설)족속들 이었다. 그 시기는 B. C. 20세기경이었고, 그 뒤 B. C. 14세기경에는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 B. C. 12세기경에는 이른바, 블레셋으로 불리었던 “Sea people"이 등장하면서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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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C. 10세기경 다마스커스는 아람 왕국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그 당시 다마스커스는 아람 왕국의 수도로서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아람 왕국이 크게 대두되던 그 당시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제외하고 줄곧 아람 왕국의 영향을 받았다.

 

앗시리아 제국이 크게 대두되면서 이 도시는 파괴(B. C. 732년)되었고 , B. C. 572년에는 ‘신 바빌로니아(Neo-Babylonian)' 제국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왕이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함으로서 다마스커스는 물론, 팔레스타인 지역(이스라엘)까지도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다시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B. C. 539년)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다마스커스는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에 의해 통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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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C. 332년 Issus의 전쟁을 계기로 그리스 제국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이 패니키아인들의 해변을 따라 근동 지역을 점령해 들어옴으로써 다마스커스는 그리스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 그리스 제국이 분열되면서 이 도시는 셀레우코스 왕조(시리아 왕국)에 의해서 통치되었다.

 

B. C. 1세기경 패트라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나바티안(Nabatean)들에 영향을 받다가 B .C. 64년 로마에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비잔틴(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700년간 통치를 받는 동안 다마스커스는 그다지 중요한 도시로 취급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로마 제국 측에서는 안타키아(안디옥)을 오히려 근동 지역을 위한 중심 도시로 활용하였고 아라비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서 ‘보스라’ 지역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행정적으로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마스커스는 상업을 위한 도시로서 계속해서 활용됨으로써 로마 제국 당시에도 어느 정도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635년 아랍 및 이슬람 군들에 의해 정복되면서 정통 칼리프시대에는 시리아주의 총독부 및 군사기지로 활용되었고, 660년대 초 이 도시는 다시 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도들은 전광석화와 같이 중동지역 전역을 휩쓴 다음 이슬람 제국을 세웠는데 첫 번째 이슬람 제국의 수도로 정해진 곳이 바로 다마스커스였다. 다마스커스는 약 1백년 동안 광대한 제국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한 세기 후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정치적인 중심축도 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661년 무아위야(Moawiya) 1세가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로 정한이래 우마이야가(家)의 이슬람 사원으로 상징되어 온 것처럼 다마스커스는 우마이야 왕조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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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의 등장은 모함마드(마호메트)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권력 투쟁의 소산이었다. 모함마드가 창건한 이슬람 제국이 635년 다마스커스를 정복한 이후 제 4대 칼리프 ‘우스만’은 그의 조카 무아위야를 시리아 주지사로 파견하여 통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우스만이 칼리프 직을 둘러싼 권력 투쟁으로 암살되고 모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인 ‘알리’가 칼리프직에 오르자 무아위야는 알리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우스만의 암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여 양자간에 무력 대결을 벌어지고 결국, 이슬람 제국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되었다. 알리 역시 암살 당한 후 수니파의 기치를 내건 무아위야가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한 우마이야 왕조를 창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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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수도를 ‘바그다드’로 천도함으로써 다마스커스는 하루아침에 하나의 지방 도시로 전락하였다. 9세기 이후 압바스 왕조의 세력이 약화되자 이 도시는 이흐시드 왕조와 장기 왕조 등 많은 지방 왕조들을 위한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1148년에는 십자군들의 정복을 모면한 후에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살라딘 왕에 의해 대(對)십자군 전략적 기지가 되었다. 장기 왕조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각종 화원의 창설, 상업, 공업 등의 진흥으로 13세기 중엽에는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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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루크 왕조시대에는 수도 카이로에 버금가는 제2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려 왔으나 1260년과 1300년의 몽골군의 침입으로 황폐화되었다. 그후 다시 1400년 티무르군의 철저한 파괴와 약탈로 30년간 폐허가 되기도 하였다.

 

1516년 오스만제국의 하나의 주로 편입된 뒤 동서무역의 중계지(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지중 해변의 패니키아 해안 도시를 오고가는 상인들에게 유명했다)로서 또한 메카 순례의 집결지로서 각광을 받아 옛날의 번영을 되찾았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벗어나 1918년 한때 파이살의 아랍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나 1920년부터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거쳐 1946년 독립한 뒤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