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윳딘입니다.

섬머 타임... 하면 아마 기억이 좀 아련하실 분들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1987년~88년 2년동안 섬머 타임을 했었던 기억이 있었죠. 

인터넷을 찾아보니 동경 표준시로 정해지기 직전인 1949년에서 61년까지 한국에서도 섬머 타임 제도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 한동안 폐지되었다가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 약 2년간 섬머 타임 제도가 잠시 부활했었다고 하네요. 제 경우는 그 잠시 부활했던 동안에 섬머 타임을 맛보았던 것이고요.

그래서 혹시나 좀 섬머 타임이 생소하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여름에 해가 일찍 뜨니까 한시간 시계를 빠르게 하자." 라는 제도인 겁니다. 즉, 시계를 1시간 빠르게 돌리고 생활은 그 돌린 시간에 맞춰서 하는 것이죠.

.... 더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1시간 일찍 일어나서 1시간 일찍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갑자기 실제적인 예시).

뭐, 이것만 보아도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라는 것은 대충 느낌이 가실 듯 합니다. 그런데 이 골치 아픈 섬머 타임이.... 바로 이곳 시리아에 있었습니다.... ㅜㅜ

일반적으로 섬머 타임은 3월 마지막 주 ~ 10월 마지막 주에 이뤄지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유럽 국가들이 마지막 주 일요일을 기점으로 하는데 반해 이곳은 이슬람 국가이니만큼 당연히 마지막 주 금요일을 기점으로 섬머 타임이 시작되었죠. 즉, 지난 3월 30일부터 이놈의 섬머 타임이 시작된 겁니다.

.... 그런데... 컴퓨터는 섬머 타임 되었소!!! 하고 바뀌어버린 건데 섬머 타임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저는.... 당연히.... 버벅이기 시작했습니다.... (...............)

.... 저희 집에 시계가 없는 관계로(......) 저는 핸드폰 시계랑 컴퓨터 시계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 시계가 안 맞기 시작하니까요.

"응? 원래 핸드폰은 자동적으로 맞춰지는 것 아니었나?" 하실지도 모릅니다만 이 동네 핸드폰은 위성이 시간 맞춰주는 것 같은 고급스러운 기능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손으로 맞춰야 하죠. 뭐, 좋아요. 여기까지는 그려러니 합시다. 

그런데, 왜 컴퓨터는!!! 왜 컴퓨터는!! 하루 일찍 섬머 타임이 적용되는 겁니까!!!

... 뭐, 여기 다마스커스가 표준 시간대에 없으니 근처 도시인 암만(요르단)이나 베이루트(레바논)로 표준 시간대를 설정해 놓은 것까지는 좋았어요. 일광 시간 절약제(이것이 섬머 타임입니다) 체크까지 되어 있는 건 윈도우 기본 설정이니 좋아요. 그래요. 하루 일찍 섬머 타임 적용된 것까지는 좋다고 칩시다.

... 하지만, 저는 그 때 이 동네에 섬머 타임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고요!!!

... 그런 상황에서 유일, 아니 유이하게 의지하고 있는 시계가 갑자기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 아니, 처음에는 그래도 좀 여유가 있었죠...

"으음. PC방 가서 시간 맞춰야겠다. 그쪽은 인터넷으로 동기가 되니까."

... 네. 다들 아시다시피 컴퓨터 시간은 인터넷으로 동기가 되니 보다 정확한 시간을 맞출 수 있죠. 그래서 저는 PC쪽이 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룰루랄라 PC방으로 와서 인터넷 동기를 시켰죠.

... 결과, 어째서 한 시간이 빠른 거야?

... 사피윳딘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 인터넷 시간은 이 동네의 표준시. 즉, 결코 틀릴 리가 없는 시간.

... 그런데, 그 시간이 한 시간 빠르게 표시되고 있다.

... 그렇다면.... 그렇다면.....

저는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PC방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 컴퓨터 시간보다 1시간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알고 있던 시간대로....

"세계가.... 부서졌다."

...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정말 저거였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니 사피윳딘이 된 기분이었죠. 정말 진지하게 주변에 시계 들고 뛰어가는 토끼가 없나 두리번 거릴 정도였습니다.

... 물론 한국 같았으면 116이라도 걸어서 확인했겠지만. 여기서는 116 같은 번호가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어쩌라고요?

... 그러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컴퓨터 시간에 나타나 있는 섬머 타임 체크였습니다. 이걸 제거하니 다시 시간이 원래대로 맞춰지더군요.

결국 결론....

"아, 요르단에서는 섬머 타임 들어갔나보구나."

... 네, 뭐, 당시 제가 맞췄던 표준 시간은 분명히 암만(요르단)이었습니다. 지금은 베이루트로 맞춰져 있습니다만.... 당시는 워낙 당황해서 바꾸느라고 암만, 카이로 등등 근처의 모든 도시들을 바꿨는데.... 다들 제각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하기를 다른 나라들은 섬머 타임 들어갔다고 판단하고 섬머 타임 체크를 지웠더니 예상대로 제대로 나오더군요.

... 뭐, 이렇게 한 건 낙착되었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날 저녁.... 저랑 같이 살고 있는 후배가 저에게 하는 말.

"형. 내일부터 섬머 타임이래요."

... 저는 조용히 컴퓨터를 켜고 섬머 타임 체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사실 속으로는 "뭐야!!! 도대체 왜 시리아는 이제서야 하는 건데!!!!" 하고 엉뚱한 요르단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그렇다고 요르단에 전화 걸어서 확인을 한다고 하면....

"여보세요. 거기 한국 대사관이죠?"
"네."
"..... 그 동네 섬머 타임 하루 일찍 적용인가요?"
"..... 어디신데요?"
"..... 다마스커스요."
"..... 그거 알아보시러 국제 전화 거셨어요?"
"..... 네."
"..... 참신한 방식의 돈 낭비+시간 낭비를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절레절레절레..... (...... 아니, 설마 대사관에서 저렇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에요....)

..... 아무리 가깝다고는 해도 일단은 다른 나라는 다른 나라.... 국제 전화 요금.... 덜덜덜덜.... (물론 가격은 전혀 모릅니다만).

..... 어쨌든 돈 나가는 짓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상당히 합리적인 이유로 인해 방금 떠오른 망상을 머리속 휴지통에 집어던져버리고 또 낮처럼 헤매는 일을 막기 위해 그 날은 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그 때는 생각지도 못한 암초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씨. 시차 적응 다시 해야 되잖아."

..... 여기서 고작 1시간 차이 가지고 뭘 그러냐 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 말씀....

..... 아침에 1시간 먼저 일어나서 출근 내지는 등교 한번 해보세요(.................).

..... 약속 시간이 갑자기 1시간 먼저 당겨졌다고 생각해보세요(................).

..... 차라리 6~7시간 뭉텅이로 바뀌면 그려러니 하죠. 그 1시간이라는 그 미묘하고도 어설픈 그 아련한 시간. 아아, 그 설익은 시간의 칼날은 제 여린 감성에 생채기를 입히기에 충분한....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 죄송합니다. 제발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이 1시간이라는 시간 차가 꽤 어색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처음 한 며칠동안은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더니 아침 6시를 훨씬 넘겨서 "어머니, 소자 잠꾸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하고 잠시동안 속으로 탄식하기도 했었고요.

뭐, 오전에 한 것도 없는데 순식간에 낮 12시가 넘어버려서 당황했던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사실 이 때는 보통 한국에서 가져온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등을 보다가 문득 시간을 보았을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그리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하는 저를 바라보며 "아아. 나도 드디어 야행성?" 하고 왠지 모를 기쁨에 젖기도 했었죠(저기 겨우 그거 가지고 야행성을 논하느냐? 하는 눈길로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저는 원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른이라고요(엣헴)).

그래도 그럭저럭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자연스런 시차 적응.... 이라기보다는 역시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에도 저는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 아무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르긴 합니다만.... 밤 중에 아버지께서 시계를 한 시간 앞으로 돌리는 모습을 상당히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침에 평소보다 1시간 먼저 학교에 가면서 뭔가 손해본 듯한 느낌에 한동안 부루퉁... 했던 때.... 그리고 다시 10월에 시간이 본래대로 돌아왔을 때, 이번에는 1시간 벌었다!! 하면서 괜히 기분 좋아졌던 느낌도 들었죠. 그리고 89년 섬머 타임이 폐지되었을 때는 다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고요.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이미 다시 완전히 섬머 타임에 대한 적응이 끝나버렸습니다만.... 그래도 이국에 와서 어린 시절 느꼈던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있다는 점은 역시 꽤 재미있습니다. 비록 좀 귀찮은 면도 있긴 합니다만 말이에요. 10월이 되면 끝나버릴 특이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아니, 어릴 때처럼 10월이 되면 또 1시간 벌었다!! 하면서 기분 좋아질지도 모르겠군요.

..... 어쨌든 덕분에 글도 하나 적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걸까요(이것이 본심?).